말레이 여객기 피격…우크라發 금융위기 '도화선'되나

우크라이나 지정학적 리스크↑…美-러 갈등 재발우려
투자심리 악화…역대 저점까지 하락한 VIX, 재차확대
"블랙스완 지수 상승에 따른 불안 재연 가능성 주시"

사진=국제금융센터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피격되면서 지정학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일이 우크라이나발(發)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될 지 시장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로이터와 블룸버그 등 주요외신은 수개월째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과의 교전지역인 러시아 국경 인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상공에서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격추돼 탑승한 승객과 승무원 등 295명 전원이 사망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공격 추세 및 원인 등이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를 반군의 소행으로 보고 있으나 반군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18일 국제금융센터와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여객기 추락 소식에 주식은 하락하고 안전자산 가격은 상승했다. 미국과 유럽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 강화 및 말레이시아 항공기 사고 등으로 선진 주요국 증시가 내림세로 마감했다.

미국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94% 내려 1만6976.81에 거래를 마쳤다. 영국 런던 증시의 FTSE 100 지수는 전일 대비 0.68%, 독일 DAX 지수는 1.07% 각각 떨어졌다. 프랑스 CAC 40 지수는 1.21% 낮아졌다.

아시아 주요 증시도 빠져 중국 상하이종합지수가 전날보다 0.57%, 일본 닛케이 225 지수도 0.06% 각각 밀렸다.

환율도 미(美) 달러화와 일본 엔화 대비 각각 약세를 나타냈다.

말레이시아항공 사태로 안전자산인 엔화는 달러화에 비해 강세를 보였다.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01.67엔에서 101.18엔으로 절하됐다.

미국의 국채금리도 증시 약세 등으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높아지며 하락했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연 2.53%에서 2.45%로 0.08%p 내렸다. 2년물도 0.48%에서 0.44%로 0.04%p 밀렸다. 이탈리아 10년물 국채금리 역시 2.82%에서 2.79%로 낮아지고 스페인도 2.66%에서 2.63%로 낮아졌다.

국제유가 역시 브렌트유는 지정학적 불안 고조와 리비아 원유생산 재개 차질 우려로 1.2% 올랐다.

최근 들어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나타내는 VIX 지수는 장기평균(20)을 크게 하회하면서 역사적 저점에 근접하고 있는데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다.

VIX 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2월중 80.86까지 치솟았다가 지난해 5월말 14.53으로 크게 떨어진 데 이어 12월말에는 13.72, 올해 6월말 11.57, 지난 15일에는 11.0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에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 등으로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증가하면서 변동성이 다소 확대되는 모습을 보여 VIX 지수가 지난 16일 12.1로 다소 높아진 데 이어 17일에는 14.5로 확대되고 있다.

VIX 지수는 미국 주식투자자들이 예상하는 향후 주가변동성을 계산해 시카고 옵션거래소(CBOE)가 매일 발표한다. 이 지수가 높을수록 투자심리는 악화됐음을 의미한다.

특히 주식시장의 급격한 투매 등 테일 리스크(tail-risk)를 반영하는 블랙스완 지수는 지난달 들어 올해 최고 수준으로 상승하고 있다.

블랙스완 지수는 2008년 11월중 129.35에서 지난해 5월말 119.51로 떨어지기도 했으나, 12월말에는 133.63으로 오른 데 이어 올 들어 6월말 139.35, 지난 15일에는 136.92로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사고로 지정학적 긴장이 다시 고조되면서 위험 회피성향이 심화됐다는 분석이다.

투자자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진정되기보다는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리스크 회피 심리가 강해지면서 주식시장 매도세가 이어졌으며 안전자산인 금과 미 국채는 모두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아람 NH농협증권 선임연구원은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추락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은 러시아 국경 인근으로 수개월간 정부군과 친러시아 반군이 대립하고 있는 곳”이라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정부는 이번 사건을 서로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감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가 미국과 러시아, 서방 세계와 러시아 간 대립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데 모든 지원을 다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때문에 이 같은 불확실성 자체가 단기적인 주식시장의 조정 요인으로 대두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서명찬 키움증권 연구원은 “전날 글로벌 증시에서는 지정학적인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강화됐다”면서 “주식은 하락했으며 국채가격은 상승했다”고 말했다.

서 연구원은 이어 “미국과 러시아 간의 충돌을 제외할 경우 말레이시아 항공기 피격에 대한 불확실성이 완화되기 전까지 단기적인 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미국이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와 대형은행, 방위산업체 등에 제재를 한층 강화할 움직임이 있어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세력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는 국제사회 요구를 수용하지 않음에 따라 추가 제재할 움직임을 보이자 러시아 주가는 4.0% 폭락하고 루블화는 2.7% 하락했다.

유럽연합(EU) 정상들도 추가 제재 조치 시행에 합의한 상태다. 유럽투자은행(EIB)과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신규사업 대출중단을 고려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은 정책금리를 연 9.5%에서 12.5%로 인상했다.

황재철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말레이시아 여객기 추락에 대한 미국 등의 반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단기간에 투자심리가 급변할 가능성은 적으나 블랙스완 지수 등 일부 변동성 지표 상승에 따른 불안 재연 가능성 등을 주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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