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속 드러나는 비리 정황에도 동양 법정관리 ‘대주주 입김’ 유지

회사채 판매 지시 등 동양등권 私금고화…개인투자자 분노
‘동양 국감’, 금융당국 무성의한 검사 ‘질타’

국정감사가 진행되면서 동양그룹의 부정과 비리 정황이 속속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17일 법원은 동양시멘트를 비롯한 동양그룹 5개 계열사의 법정관리 신청을 수용했다.

특히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등 대주주의 입김이 닿는 사람들을 관리인으로 선임해 피해자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한편 이날 진행된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은 예상대로 ‘동양 국감’으로 진행됐으며, 특히 금융당국의 ‘무성의하고 부실한 검사’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법원, 동양 5사 법정관리 개시 결정 

서울중앙지법 파산6부(이종석 수석부장판사)는 이날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의 법정관리 개시를 결정했다.

같은날 법원 파산3부와 파산4부도 각각 동양네트웍스와 동양시멘트의 기업회생절차 개시 신청을 받아들였다.

우량한 회사인 동양시멘트가 법정관리 요건에 맞느냐는 논란이 심했지만, 법원은 법정관리 개시 요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일 만기가 도래한 어음 20억원을 변제할 수 없을 정도로 현금이 부족했고, 연말 기준 800억원 이상 유동성 부족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5개 계열사가 모두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되면서 협력업체와 동양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투자자들, 동양시멘트 주식을 담보로 ㈜동양이 발행한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 매입자들은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뿐만 아니라 재판부가 동양그룹 대주주의 입김이 닿는 사람들을 그대로 관리인에 선임함에 따라 피해자들의 분노는 하늘 높이 솟구치고 있다.

재판부는 (주)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에 대해 박철원, 금기룡, 손태구 등 기존 대표이사를 그대로 관리인으로 선임했다. 그 외 정성수 전 현대자산운용 대표이사, 최정호 전 하나대투증권 전무, 조인철 전 SC제일은행 상무가 각각 공동관리인이 됐다.

동양네트웍스에는 김철 대표와 현승담 대표가 배제됐지만, 역시 내부인사인 김형겸 이사가 관리인으로 선임됐다.

이 때문에 “법원이 형식적인 안전장치를 뒀을 뿐 결국 대주주 입김이 닿는 사람들이 고스란히 관리인으로 남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피해자들은 “현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국민을 상대로 채권과 CP를 돌려막기 한 금융사기에서 ‘동양 사태’가 불거진 것인데, 그 책임자들이 그대로 관리인 역할을 맡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분노했다.

한 동양그룹 CP 투자자는 “우량한 회사인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 신청을 기각하지 않은 것도 모자라 현 경영진을 그대로 앉혀놨다”며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를 열어 피해 최소화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편 5개 계열사의 법정관리는 회생계획 인가와 채무변제 등 관련 절차를 최대한 신속히 진행하는 패스트트랙(Fast Track) 방식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주)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은 다음  22일까지 채권을 신고받고 내년 1월10일 첫 관계인집회를 열기로 했다. 5개 계열사는 모두 신속하게 회생계획안을 마련해 내년 초부터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해 조기에 법정관리를 졸업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여러 위험에 노출된 동양그룹 계열사에 대해 제값을 쳐줄 원매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대주주가 경영권은 유지하고 싶어하지만, 회사를 살리기 위해 사재를 출연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 회장은 이미 지난 2008부터 여러 차례 사재를 내놓았기 때문에 따로 출연할 생각은 없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현 회장 등 대주주 일가의 자산은 부동산과 주식 등 약 50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私금고화된 동양증권

특히 피해자들을 격노케 한 것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동양그룹 대주주가 동양증권을 사실상 사금고화하는 등 각종 비리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법원이 법정관리를 강행한 부분이다.

이날 무소속 송호창 의원이 동양증권 CP 판매 관련 내부 이메일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정진석 동양증권 사장은 지난달 9일 동양증권 강남본부 직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동양레저 발전지분을 담보로 브릿지파이낸싱이 가능하고, 시기도 우리가 정할 수 있다”, “브릿지론 금융기관은 다 정해져 있다” 등의 말을 건넸다고 한다.

송 의원은 “정 사장이 허위사실을 퍼뜨려 CP 판매를 독려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지난해 10월 18일 개최한 동양증권 이사회 회의록을 입수해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당시 이승국 동양증권 대표는 현 회장을 비롯해 참석 이사들에게 “(주)동양의 재무적 어려움으로 인한 문제 발생시 ㈜동양과 관련된 당사 금융상품 고객들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로 인한 동양의 평판리스크 하락으로 인해 측정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가 예상되므로 당사와 고객, 주주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덧붙였다.

김 의원은 “이는 현 회장을 비롯한 동양증권 이사들이 동양그룹 문제로 인해 고객들의 피해가 발생할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증거”라면서 “그럼에도 올해 부실 계열사의 회사채와 CP를 1조 7000억원어치나 팔았다는 것은 사기행각에 가까운 짓”이라고 질타했다.

그밖에 정 사장이 이메일을 통해 동양증권 직원들에게 회사채와 CP 판매를 독려한 정황도 확인됐다.

현 회장은 이날 국감장에서 “저희를 믿고 투자해주신 투자자 여러분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게 돼서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비통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며 “엎드려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무성의한 검사로 ‘동양 사태’ 키운 금융당국

한편 이날 국감장에서는 금융당국의 무성의한 검사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거센 비판이 이어졌다.

새누리당 유일호 의원은 미리 배포한 질의에서 “금융위가 지난해 11월 금융투자업 규정 변경 예고를 통해 올해 4월 개정안을 내놓았으나 해당 규정의 시행일을 기존 7월에서 6개월 이후인 10월로 미룬 것은 동양그룹의 로비와 관련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시행 시기를 3개월 후에서 6개월 후로 미룬 것이 오히려 투자자들의 피해를 줄인 것”이라고 답했으나, 새누리당 안덕수 의원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금융위가 동양그룹 회사채, CP 발행과 판매의 위험성 실상과 위기 상황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것이면 무능의 책임을 져야 하고, 동양그룹건의 때문에 입법예고를 3개월 늦췄다면 결탁 의혹이 규명돼야 한다”며 금융위원장의 책임을 거론했다.

그는 “금투업 규정 개정을 3개월 미룬 탓에 그 사이 8000억원에 달하는 CP와 회사채가 신규로 발행돼 피해자들을 크게 늘렸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상직 의원은 “지난 2009년 이후 금융감독원이 무려 5번에 걸쳐 검사를 실시했는데도 동양그룹은 지속적으로 회사채와 CP를 발행했다”며 “수차례에 걸친 금감원의 검사와 제재에도 동양그룹 계열사의 폭탄 돌리기가 계속되는 것을 금융당국이 사실상 방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김기준 의원도 17일 “금융위는 대기업이 ‘동양 사태’를 막을 기회가 3번이나 있었는데도 이를 방기했다”며 “당시 동양 계열사의 재무상태가 심각한 상태였는데도 왜 동양증권의 계열 회사채 및 CP 발행을 막지 않았느냐”고 질타했다.

새누리당 김종훈 의원은 “지난 2010년부터 동양증권이 민원발생 최다를 기록했으며, 지난해에는 민원발생 평가에서 꼴찌를 기록해 불완전판매 의혹이 제기됐다”며 “이를 알면서도 금융당국이 규제 허점, 불완전판매 방치, 주채무계열 관리 소홀 등으로 동양 사태 확산을 방조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신 위원장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조사가 미흡했음을 인정했다.

안재성 세계파이낸스 기자 seilen78@segyef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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