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달러당 103엔 수준까지 이른 엔화 하락 기조에 따라 지난 1분기 우리 경제와 기업들이 낭패를 볼 것으로 우려됐었다.
하지만 1분기 실적의 뚜껑을 열고 보니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과의 경합관계도 높은 우리 기업들이 오히려 의외의 선전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가장 우려됐던 철강과 자동차는 물론 IT(정보기술)분야까지 전반적인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하긴 했지만 충분히 버텨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엔저로 인해 침체된 경기에도 오히려 엔화 약세를 역이용해 경쟁력을 키우며 실적 성장세를 보이는 기업들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또 정부와 당국도 기업들의 엔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정책을 펴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어 엔저시대에 국내 기업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 기업들, 1Q 의외의 선전
지난 7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시장 상장사 79개사의 1분기 실적을 검토한 결과, 한미약품·동국제강·두산 등 18개사가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한미약품은 지난 3일 1분기 실적과 관련된 공시를 통해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7.3% 증가한 1703억원, 영업이익과 순이익도 각각 180억원, 149억원을 달성하며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LG이노텍도 전분기 대비 151% 오른 158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시장 컨센서스인 97억원을 웃돌았다.
이밖에 동국제강은 479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전분기 285억원의 적자에서 흑자 전환했고, 효성도 영업이익이 174% 증가하며 960억원의 성장세를 보였다.
◆ 자동차업, 우려 속 약진 돋보여
자동차업의 약진이 눈에 띈다. 국내 리더(Leader)격인 현대·기아차가 글로벌시장에서의 자동차 수요 침체에도 불구하고 유럽시장을 필두로 점유율을 점차 넓혀나가며, 정작 엔화 약세를 등에 업고 선전해야 할 일본 경쟁업체들을 추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4월까지 유럽시장 내 도요타와 닛산의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13%(17만9000여대), 5.4%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현대·기아차는 25만9000대를 팔아치우며 유럽 내 시장점유율을 6.2%(0.4%↑)를 차지했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유럽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체 세계시장 판매 기록에서도 현대·기아차는 미국시장에 편중된 일본 도요타(3.1%↓)와 달리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3%의 증가율을 보였다.
신정관 KB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양사의 글로벌 판매 수준은 비슷한 위치에 놓여있다”며 “그동안 침체되었던 유럽 자동차시장의 수요 회복 조짐이 현대·기아차를 중심으로 한 국내 자동차업체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고, 신흥시장에서의 추가적인 성장세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 엔화약세에도 굳건한 IT기업
자동차업의 선전 외에도 IT기업의 약진도 진행 중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국내 기업의 IT수출이 지난달 141억3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7.5% 증가해 월간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고 지난 9일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미래부는 “반도체, 휴대전화, 컴퓨터 등 대부분의 IT제품이 고른 성장세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대표적인 기업으로 SK하이닉스와 LG전자를 꼽을 수 있다. LG전자는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이 199% 증가한 3494억5700만원을, SK하이닉스는 476.6%나 오른 3169억5100만원을 각각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LG전자의 경우 엔저 기조가 고착화된 상황에서도 스마트폰의 판매증가가 한 몫하며 이익성장을 보인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LG전자의 1분기 스마트폰 출하량은 1030만대로 전분기 대비 19.7% 증가했고, 특히 프리미엄급 스마트폰인 롱텀에볼루션(LTE)비중이 27% 증가해 평균판매가격(ASP)이 전분기보다 14% 오르며 1328억원의 영업이익 달성을 가능케 했다.
SK하이닉스의 경우에는 PC DRAM 가격 상승과 모바일 DRAM 매출 호조, 모바일 기기 및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향 낸드 플래시(NAND Flash)가격까지 동반 호조세를 보인 것이 엔화 약세 국면에도 선방할 수 있었던 주된 요인으로 분석된다.
송은정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LG전자는 실적을 바탕으로 2분기까지 실적 우상향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며 “실적 호재로 인해 주가가 우상향 함에 따라 차익실현은 발생하겠지만 현시점에서의 전망은 밝다”고 말했다.
김경민 현대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순항이 예상된다”며 “연말까지 모바일 DRAM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이고, 하반기에 안드로이드 계열의 하이앤드(high-end)스마트폰이 3GB모바일 DRAM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고, 플레이스테이션4(Playstation4) 등 신규 케임콘솔도 8GB 그래픽 DRAM을 채용할 것으로 보여 실적 향상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한국 중공업체, 높은 수주와 양호한 실적 보여
삼성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국내 중공업체들도 선전하고 있다. 높은 수주와 양호한 실적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의 1분기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9% 증가한 3조8879억원, 영업이익은 34.1% 상승한 4402억원을 달성했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체인지오더에 따른 일회성 이익 880억원을 감안하더라도 기대치보다 높은 이익을 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건조수익성이 큰 드릴십 비중이 높고, 수주잔량의 영업마진이 시장 진단보다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불어 올해 매출도 지난해에 비해 2% 중반대로 증가해 15조원에 가까운 규모를 달성할 것으로 평가했다.
현대미포조선은 1분기 9079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5% 증가했다. 이에 대해 업계전문가들은 수주실적 달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모습이다. 현대미포조선은 지난 10일 기준으로 PC선 42척을 비롯해 총 54척을 수주해 18억달러 수준의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 정부의 엔저대책 마련 등 향후 전망 긍정적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장기간 진행되고 있는 엔화 약세에 대해 넓은 시각에서 국내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마련하는 방안과 환율 변동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정책적 조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엔화 약세 흐름이 급속도로 진행됨에 따라 엔저에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수출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금융 및 기타 정책을 탄탄하게 실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전문가들도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조성준 NH농협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하반기 일본은행의 무제한 양적완화 시행으로 엔화약세가 이어지며 국내 수출주 실적 부담이 가중되었지만,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 경기 회복세와 주가 상승이 진행되고 유로존의 긴축 완화 및 경기부양 기대로 하반기 소비 회복 기대가 커지고 있다”며 “이는 향후 국내 수출주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성노 KB투자증권 연구원도 “엔화약세에 대한 우려는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엔화약세와 일본시장으로의 자금유입에도 불구하고 뱅가드 우려가 완화되고 있는 등 국내 수급 상황도 최악을 지나고 있다”고 말했다.
권준상 세계파이낸스 기자 kjs@segyef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