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불황 무풍지대'는 옛말…문닫는 학원↑

"대치동 학원가 생긴 이래 요새가 제일 어렵습니다. 학원이 나간 자리에 다른 학원이 아닌 고깃집이 들어오는 건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던 광경이죠."

10일 '사교육 1번지'라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수학학원을 운영하는 A씨는 "2~3년 전보다 학원 수강생이 절반 정도 줄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A씨를 비롯한 대치동 학원 관계자들은 요즘 대치동에 문 닫는 학원도 많고, 문을 닫지 않더라도 적자경영을 하는 곳이 상당수라고 입을 모았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불황 무풍지대'로 알려진 사교육 시장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학부모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데다가 정부의 학원 규제 정책, 입시환경의 변화 등이 겹친 영향이다.

◆ 문 닫는 학원↑…"운영비용 감당못해"

사교육 시장의 불황은 학원 수가 감소세를 보이는 데서 잘 나타난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9일 기준 정식 등록된 서울지역 학교 교과 학원 수는 1만3208곳이다.

2009년 말 1만3510곳이었던 학원 수는 2010년 말 1만3504곳, 지난해 말 1만3352곳으로 줄었다.

새로 설립 신고하는 학원 수도 2009년 1508곳, 2010년 1483곳, 지난해 1206곳, 올해 1070곳으로 매년 감소했다.

지난해부터는 학원 폐원 수가 설립 수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지난해는 1243곳이, 올해는 1200곳이 각각 폐원 신고를 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임대료나 인건비 등 학원 운영에 필요한 고정비용은 줄지 않는데 학생 수는 줄고 있다"며 "수익을 담보 못하니까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폐업하는 학원이 속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치동 학원가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한 때 1억원에 달했던 학원 권리금이 이제 사실상 0원"이라며 "학원 매물은 꾸준히 나오는데 거래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시교육청에 신고한 개인과외교습자 수는 올해 6월 기준 1만5434명으로 2009년 말(1만2843명)보다 2591명 늘었다.

최근 학원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많은 강사가 개인 과외나 소규모 '공부방'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학원 관계자들은 전했다.

◆ 지갑 닫는 학부모들

가계 사정이 빠듯해진 많은 학부모가 학원비 지출을 줄이고 있다. 학원들이 경영난을 겪는 직접적인 이유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3분기 가계동향을 보면 학원ㆍ보습교육비 지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7% 감소했다.

또 2010년 1분기 이후 11분기 연속 사교육비 지출은 전체 소비지출 증가율에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대치동의 한 중ㆍ고등부 종합학원 원장 B씨는 "예전에는 학부모가 수강료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요즘엔 등록을 문의할 때 수강료부터 묻는 학부모가 많다"고 말했다.

입시학원은 과거 불황에도 홀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터넷 강의나 방과 후 학교 등 학원의 대체재가 늘어나 학원을 찾는 학생이 줄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기도 안산에서 중등부 학원을 운영하는 C씨는 "예전에는 공부하려면 학원에 가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인터넷 강의나 방과 후 학교 등이 있어 굳이 학원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많다"고 전했다.

김승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실장은 "학원 사교육을 학교로 끌어들여 싸게 공급하는 것이 방과 후 학교"라며 "학교에 따라서는 방과 후 학교가 아이들을 학원으로 못 가게 잡아놓고 있다"고 말했다.

◆ 사교육 규제와 입시환경 변화

학원 교습시간 규제, 학원 신고 포상금제(학파라치) 등 정부의 사교육 억제 정책도 효력을 발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설학원 연합체인 한국학원총연합회 관계자는 "정부가 사교육 경감정책을 밀어붙이는데 경기도 좋지 않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많은 학원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치동의 한 국어학원 원장은 "밤 10시까지밖에 학원을 못하니 10시 이후에 열리던 강좌를 다 없앴다"며 "없앤 강좌들을 주말반으로 돌리는데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또 쉬운 수능 기조, 대학 입시전형 다양화 등 입시환경의 변화도 꾸준한 호황을 누려온 사교육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외국어고 입시의 변화가 결정타라는 게 학원가의 분석이다. 2010학년도부터 외고는 영어 내신과 인성면접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목동에서 특목고 대비 학원을 운영하는 D씨는 "외고 입시가 주저앉으면서 중학교 내신에 대한 수요가 줄었다"며 "외고는 영어 내신만 보고 과학고도 수학ㆍ과학만 하니까 중학생들이 전 과목을 가르치는 종합학원에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현 정부도 학원 진흥이 아닌 사교육 규제에 주안점을 뒀고 대선 후보들도 모두 사교육비를 줄이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며 "불황에 학령인구도 줄고 있어 입시학원 운영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파이낸스 뉴스팀 fn@segyef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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