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장전략] ECB 훈풍,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

호재를 즐기기보다 정책적 한계 파악도 중요

유럽에서 훈풍이 불어오며 글로벌 시장에 일제히 급등했다.

이에 따라 최근 조정 흐름을 나타내던 국내 증시에도 한줄기 서광이 비치고 있다. ECB가 1~3년 단기물 국채에 대한 무제한 매입이라는, 사실상 시장 예상 수준에 '맞춘' 정책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장이 이에 화답한 것은 전망만큼 우려도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발표로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유럽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호재를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머리를 차게 식히고, 이번 정책의 한계에 대해 짚어볼 필요는 있다.

유신익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의 정책 발표는, 글로벌 시장에서 기대해 왔던 사항을 일부 이행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며 "또한 국채 매입규모와 대상국을 제한하지 않는, ‘무제한 매입의 형태’라는 점도 시장 기대를 충족시킬만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고려해야할 사항이 있다고 말한다. ▲ 불태화 정책 시행에 의한 효과 반감 가능성 ▲ 유럽재정안정기금(EFSF)과 유로안정화기구(ESM)에 선지원 요청 ▲ 국채매입만을 발표 등이다.

우선 불태화 정책을 시행했다는 점을 살펴보면 ECB는 과도한 국채매입으로 발생할 인플레이션 압력 증대를 고려해, 채권 매입 규모만큼의 자금을 시장에서 회수할 것을 표명했다.

유 연구원은 "이 경우 매입 대상 채권의 금리는 하향 안정화될 수 있지만, 유동성 회수의 대상이 될 단기물 채권 금리는 재상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면서 "특히 단기물 채권 금리의 재상승이 시현될 경우, 1~6개월 유라이보(Euro Libor) 금리의 상승 압력이 증대되면서, 단기 자금시장의 경색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번 정책이 우선적으로, 유럽재정안정기금(ESM)의 정상 운용을 전제로 했다는 점도 고민이다.

ESM의 합헌 여부 결정에 대해서는 독일의 판단(헌법 재판소)이 중요한 사항이 될 것이고, 향후 ESM의 운용에 있어서도 독일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ECB가 표면적으로는 독립적인 ‘전면적 통화거래(Outright Monetary Transactions) 정책’을 발표하였지만, 종국에는 독일의 판단 여부에 따라 정책이 제한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강력한 유로화 지지 수단의 정책으로서, 금리인하·SMP·LTRO 등, 모든 방안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 총체적 정책이 결정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는데 이들 중 국채매입에만 국한했다는 점도 우려다.

유 연구원은 "물론 국채매입의 규모를 무제한으로 설정하였다는 점은 강력한 수단의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면서도 "이번 매입규모 역시 결국에는, ESM 운용과 관련되는 국가(예를 들면, 독일)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고려하면, 이번 정책도 일정 부분 한계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ECB의 무제한적 국채 매입 선언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며 "무제한적이라고 말하지만 많은 금액을 쏟아 붓지 않더라도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국채 금리 하락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ESM 합헌 여부 및 스페인의 구제금융 신청이 향후 절차상 필요 조건이나 큰 불확실 요인은 아닐 것"으로 내다봤다.

박 연구원은 "높아진 유로존의 리세션 탈피 가능성은, 중국의 경기 모멘텀 공백을 메우면서, 8월 이후 양호한 미국 경제의 하드 데이터(hard data)와 더불어 위험 선호 회복에 중요한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인플레 및 낮은 금리 등에 대한 부담이 있는 중국 등 신흥국은 이를 빌미로 그들의 내수 진작 노력에 다소간의 여유를 갖게 됐다"며 "한국도 9월 금리 인하가 시급하지 않게 된 듯하다"고 했다.

또한 이번 ECB에서 무제한 국채 매입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산적한 현안들의 끝은 아니라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는 있다.

신환종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ECB의 통화정책회의 이후 재정위기의 관전포인트는 유럽 정치권으로 옮겨갔다"면서 "ECB가 국채 매입 결정을 통해 시간을 벌었지만, 이후 유럽 정치권의 추가적인 액션이 뒤따르지 않으면 금융시장은 다시 한번 혼란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어 "단기적으로는 9월 주요 이벤트의 향방에 따라 금융시장의 방향성이 결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현재 대기하고 있는 이벤트는 많다. ▲ 9월 중 스페인의 구제금융 신청 여부(뒤따른 이태리의 거취 문제) ▲ 오는 12일 독일 헌재 ESM 판결, 네덜란드 총선 ▲ 14,15일 유럽 정상회의 ▲ 9월 말 트로이카의 그리스 실사 결과 발표 등이다.

신 연구원은 "유럽 재정위기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중장기적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면서 "스페인의 원활한 구제금융, ESM의 정상적인 출범,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 등 긴급한 현안들이 해결된 이후에도 경기침체와 사회불안, 구조개혁 등의 과제들이 해결되기까지 이슈는 반복되며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했다.

유병철 세계파이낸스 기자 ybsteel@segyef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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